ソース:反日 積弊(적폐)는 왜 청산 안하나?

日本語ソース:【韓国の反応】バンダービルド「韓国はなぜ嘘まみれの歴史にぶらさがり、『反日』することをやめられないのか」

오늘날 자유민주국가 중에서, 더구나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대표적 문명국가 중에서한국 만큼 온 나라가 거의 한통속이 되어 연중, 특정 국가를 집요하게 미워하고 공격하는 사례는 없다. 그것도 같은 자유진영 국가를 대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희한한 것은, 오늘날의 일본이 저지른 부도덕이나 잘못을 문제시하며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참 전에 끝난 과거의 문제를 끄집어내어 오늘날의 일본을 미워하고 공격한다는 점이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문제 삼는 ‘과거의 문제’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과장이나 날조, 왜곡으로 점철된 ‘허구’에 가까운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지나간 ‘과거의 문제’를 자꾸 끄집어 내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닌데, 나아가 그 ‘과거의 문제’라는 것조차 사실상 팩트가 아니라 과장이나 날조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Among today’s free democratic countries, much less among the civilized nations that boast the world’s top 10 largest economies, there is no nation but South Korea that rally around to incite nation-wide hatred and attack a particular nation all year round. It is hard to deem normal especially due to the fact that the target of this phenomenon is a fellow free nation. What is further perplexing is that what South Korea clings to is not immoralities or wrongdoings that Japan is committing today, but quite archaic ones that have already been resolved. Furthermore, most of what Koreans today call “issues of the past” are closer to “fiction” that is exaggerated, fabricated, or distorted. It is not desirable to take away the past problems and attack the other side. Attacking someone based on “issues of the past” from long time ago is undesirable enough; it would be an even more serious issue if such “past issues” are based on exaggerations or fabrications rather than facts.

今日の自由民主国家の中で、しかも経済規模世界10位圏の代表的な文明国の中で、韓国ほど国全体がほとんどグルになって、年中特定の国を執拗に憎み、攻撃している事例はない。また、同じ自由陣営国家を対象にしてそのようにしているという現象は、どう考えても正常と見るのが難しい。不思議なのは、今日の日本が犯した不道徳や過ちを問題視して食い下がっているのではなく、すでにかなり前に終わった過去の問題を取り上げて、今日の日本を憎み、攻撃しているという点である。しかも驚くべきことに、今日の韓国人たちがこの問題について主張している「過去の問題」というものも、事実を考えてみれば、ほとんどが誇張や捏造、歪曲で綴られた「虚構」に近い側面が多い。過ぎ去った「過去の問題」をしきりに取り出して相手を攻撃するのも望ましいことではないのに、その「過去の問題」がファクトではなく、誇張や捏造に基づいたものならば、問題は深刻だと見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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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과거 일본이 실시한 ‘징용’을 문제 삼는다. 그런데, 당시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 모두 똑같이 일본국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는 조선인이 일본국적자의 일원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어디를 가든 기본적으로 일본국민 대접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은 징병이 되어 전쟁터에서 전사하거나 굶어죽었다. 반면, 똑같은 일본국적의 조선인들은 전쟁기간 초반과 중반까지 징병은 물론 징용조차 당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전쟁말기인 1944년 9월 이후 비로소 조선인에 대해 징용 동원령이 내려졌다. 물론 법적으로 합법적 조치다. 한 마디로 일본인들은 당시 주로 전쟁터로 동원되었고, 조선인들은 후방의 공장 등으로 동원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들은 이러한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이 무조건 흥분한다. 결과론적으로 따져 보면, 당시 일본 정부는, 오늘날 21세기 한국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당시 일본인들은 전쟁터로 동원해 전사하고 굶어죽게 만들면서도, 똑같은 일본국적의 조선인들은 후방에서 편하게 자유롭게 지내도록 보장해 주었어야 한다는 결론(발상)에 도달한다. 한 마디로, 구한말 조선 정부와 백성들이 국제정세 등에 어둡고 무지몽매해 일본에 합병된 것(식민지배된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限, 이같은 발상은 누가 봐도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무시하고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은, ‘징용’에 대해 ‘일제만행’ 운운하며 동서고금 항상 존재하는 당시의 지엽적 산재사고(산업재해)까지 과장.왜곡하며 이것이 마치 일제의 탄압인 것 처럼 내세우며, 영화로까지 만들어 개봉하는 등 오늘날 反日 캠페인에 거의 혈안이 된 모습이다.

For example, today, many Koreans criticize alleged “forced recruitment” by Japan in the past. Well, at that time, both Japanese and Korean people lived as the same Japanese nationality. Koreans then traveled the world as Japanese nationals, basically being treated as Japanese citizens no matter where they went. At the time of the Pacific War, the Japanese were drafted and warried or starved to death on the battlefield. Meanwhile, the Koreans of the same Japanese nationality stayed in relative safety, not even drafted until the beginning of the war period. In the meantime, since September 1944 towards the end of the war, the first mobilization order for the Koreans was issued. Of course, it was a legal measure. Put it simply, it was mainly the Japanese that were mobilized to the battlefield at that time, while the Koreans were mobilized to the back factories and others. Even so, today’s Korean people have no understanding of the situation at the time, and unconditionally irritate Japan over this. Looking back, one may suppose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at that time, in order to satisfy the 21st century Koreans, mobilized the Japanese to the battlefield where they starved to death, while the Koreans then, of Japanese nationality, enjoyed safety and freedom. Put simply, at the end of the former Han Dynasty,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people were in the dark when it came to international situations, and they were annexed (colonized) by Japan; but unless you confuse this as getting a Japanese government post, such ideas seem to be impossible for anyone to take seriously. Ignoring such a situation of the time, many Koreans today engage in frantic anti-Japan campaigns, calling out “Japanese barbarism” over said “recruitment”, exaggerating and distorting even worker accidents that have ever existed since the dawn of the time, in the East and the West, as if to say those, too, were a result of Japan’s oppression, making a movie about them for the world to see.

例えば今日、多くの韓国人が、過去に日本が実施した「徴用」を問題視している。さて、当時は日本人も朝鮮人も、すべてが同じ日本国籍として生きていた。当時は朝鮮人は、日本国籍者の一員として、世界を旅し、どこに行っても基本的に日本国民としての待遇を受けていた。太平洋戦争当時、日本人は徴兵されて戦場で戦士したり餓死していた。一方で、同じ日本国籍の朝鮮人たちは、戦争期間の初めと半ばまで、徴兵はもちろん徴用さえされずに比較的安全に過ごしていた。そうするうちに戦争末期の1944年9月以降、初めて朝鮮人への徴用動員令が下された。もちろん法的に合法措置だ。一言でいうと日本人たちは、当時は主に戦場へと動員されていたが、朝鮮人は後方の工場などへ動員されていたということだ。なのに今日の韓国人は、このような当時の時代状況への理解も全くなく、無条件に刺激している。結果論的にみると、当時の日本政府は、今日の21世紀韓国人を満足させるため、当時の日本人は戦場に動員して餓死させつつ、同じ日本国籍の朝鮮人は、後方で楽に自由に過ごせるように保証を与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いう結論(発想)に達する。一言でいうと、旧韓末、朝鮮政府と民が国際情勢などに暗くて無知蒙昧で日本に併合された(植民地支配された)わけだが、それを官職を得たと勘違いしない限り、このような発想は誰が見ても無理があ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このような時代状況を無視し、今日多くの韓国人たちは、「徴用」について「日本の蛮行」云々言い、古今東西常に存在している労災事故まで誇張・歪曲し、これがまるで日本の弾圧であるかのように掲げ、映画まで作って公開するなど、反日キャンペーンにほとんど血眼になっている状況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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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derly Cheju residents denied “Japan’s abduction of Korean Women”

위안부 이슈 또한 비슷하다.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라는 사람이 ‘제주도에서 조선 여성을 납치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렸고, 이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위안부 이슈다.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과 이러한 거짓말을 검증절차도 없이 아사히 신문이 보도하자, 위안부였다고 주장하는 한국인 여성들이 나타났고, 객관적 근거도 없는 이들 여성의 ‘증언’만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바로 ‘위안부 문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강제연행의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던 일본 정부를 향해 ‘강제성 있었다고 일본 정부가 인정만 해주면 앞으로 더이상 위안부는 문제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한국의 이러한 약속을 믿은 일본측은 ‘고노담화’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로 한국측은 이러한 ‘고노담화’를 가장 큰 무기로 일본을 더욱 집요하게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 진정한 사죄 안했다’ 혹은 ‘개인 청구권은 별개’라는 등의 오늘날 한국측 주장은 사실상 위안부 문제를 평생 끌고 가고자 하는 구실이자 억지에 가깝다.

The comfort women issue is similar. A Japanese man called “Seiji Yoshida” spread the lie that “I abducted Korean Women in Cheju Island”, which was majorly covered and spread by Japan’s Asahi Newspaper; this was the start of the whole comfort women issue. After Seiji Yoshida’s lies, Asahi covered them without verification, after which Korean women came out one after another to drag on the “comfort women issue” based solely on their “testimonies” without any objective evidence. Then-president Kim Young-sam promised to the Japanese government, who adhered to the position that there was no objective evidence of compulsory recruitment, that “if the Japanese government acknowledges that it was of compulsory nature, we will not make the comfort women an issue in the future.” The Japanese side, believing this promise in South Korea, announced the “Kono discourse”. However, since then, the Korean side has attacked Japan with even more persistance and vindication, making such “Kono discourse” their biggest weapon. The argument from the Korean side today is along the lines of “You have not yet made a truly sincere apology” or “those individuals have separate rights to claim conpebnsations”, which are virtually an excuse to permanently cling onto this comfort women issue.

慰安婦問題も似ている。日本人「吉田清治」という人が、「済州島で朝鮮女性を拉致した」という嘘を広めたし、これを日本の朝日新聞が大々的に報道して生まれたのが慰安婦問題である。吉田清治が嘘をつき、こういった嘘を検証もせずに朝日新聞が報道すると、慰安婦だったと主張する韓国人女性が現れて、客観的根拠もないこういった女性の「証言」だけで、今まで続いてきたのが「慰安婦問題」だ。当時金泳三大統領は、強制連行の客観的証拠がないという立場を堅持していた日本政府に対し、「強制性があると日本政府が認めてくれれば、今後はもう慰安婦は問題にしない」と約束した。韓国のこのような約束を信じた日本側は「河野談話」を発表した。ところが、それ以来、韓国側はこのような「河野談話」を最大の武器にして、日本をさらに執拗に攻撃する状況となった。「まだ真の謝罪をしていない」あるいは「個人請求権は別」などという今日の韓国側の主張は、事実上、慰安婦問題に永久にぶら下がっていくための口実であり、ごり押しに近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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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관련 미스터리는 많다. 한반도 여성 강제연행의 객관적 증거가 아직 전무하다는 것 外, ’20만명’, ‘성노예’라는 說 또한 객관적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발견되는 것은, 당시 신문 등에 위안부 모집 광고가 실렸고, 미군 자료 등에서 위안부들이 대가(급여)를 받았고, 위안부들이 고향에 돈을 송금했고 이것으로 주택 등을 매입했다는 사실 등이다. 그런데 만약, 위안부 강제연행이 사실이라고 치면, 당시 한반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당혹스러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동족 여성이 성노예로 끌려가는 동안 여기에 대해 항의했다는 부모, 형제, 친척, 동네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여타 조선인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는 기록도 없다. 실종신고 기록도 없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동족(심지어 가족에게)에게 가장 잔인한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라는 결론 밖에 안나온다. 성노예라는 천인공노할 인륜적 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해방후 거의 40년 동안 거의 침묵한 것도 납득이 안가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일본을 향해 불같은 증오를 쏟는 위안부 출신 일부 여성들의 면모를 보면 해방후 40여년 동안 침묵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다. 

There are many mysteries surrounding the comfort women. There is no objective evidence that girls and women on the Korean Peninsula were forcibly recruited, and the allegations of”200,000 people” and “sex slaves” also have no objective evidence, either. Rather, what have been discovered so far are comfort women recruitment ads on newspapers etc. at that time; US military materials etc. which recorded such facts as that comfort women received salaries and sent money to their families and even bought houses and the like. Furthermore, if we suppose the compulsion was a fact, people in the Korean Peninsula at the time face the disturbing question of “what were they doing?” There is no record that there were parents, brothers, relatives, neighbors who fought when their family women were allegedly taken as sex slaves. There is no record of missing persons, either. So, then, the only conclusion one could reach is that the most cold-hearted people in the world would be, in fact, the family members of such Korean women. It is not convincing that women who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a crime that would enrage the heavens, remained silent for nearly 40 years after the independence. Looking at the furiously vocal “former comfort women” that spew flaming hatred toward Japan today, I find it hard to believe that they managed to remain silent for more than 40 years.

慰安婦関連の謎は多い。朝鮮半島の女性を強制連行したという客観的証拠がいまだ皆無であり、「20万人」「性奴隷」という説もまた客観的な証拠がない。今までむしろ発見されているのは、当時の新聞などに慰安婦の募集広告が出ていたこと、米軍資料などによると慰安婦が対価(給与)を受けており、慰安婦が故郷にお金を送金し、さらに住宅などを買っていたという事実などである。しかも、もし慰安婦強制連行が事実だとすると、当時の朝鮮半島の人々は、一体何をしていたのかという厄介な問題に直面する。同族の女性が性奴隷として連行されているときに、それに抗議したという親、兄弟、親戚、近所の人がいたという記録が全くない。朝鮮人たちが組織的に低抗したという記録もない。行方不明の記録もない。もしそうなら、世界で同族(しかも家族)に最も残忍な民族がまさに韓民族だという結論しか出ないのだ。性奴隷という天も激怒する人倫的犯罪にあった女性たちが、解放後40年近くの間、ほぼ沈黙していたというのも納得できない。今日、日本に向かって火のような憎しみを噴出させている慰安婦出身の一部の女性の姿を見ると、解放後40年余りの間沈黙していたというのが信じら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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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은 2014년에 자신들이 과거에 보도한 위안부 관련 ‘제주도 강제연행’이 오보였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로써 위안부 이슈는 사실상 원인무효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강제연행’인데, 이러한 핵심이 치명상을 입었으니, 위안부 문제는 2014년 아사히의 오보인정으로 사실상 핵심이 실종된 허구(속칭 ‘앙꼬 없는 찐빵’)가 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제연행인 줄로 알고 이슈화했는데 그것(강제연행)이 거짓이었다니 당연히 원인무효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위안부 문제로 한국과 일본, 국제사회(유엔, 미의회 등)가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이기에 지금에 와서 원인무효로 돌리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가장 현실적 해결방법은 이슈의 ‘페이드 아웃'(점차 소멸) 밖 에 없다.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쪽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反日에 매몰된 한국측은 가급적 위안부 이슈를 계속 끌고가는 가운데 일본을 계속 공격하려는 의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In 2014, the Asahi Newspaper officially announced that their coverage of the comfort women’s “forced recruitment in Cheju” was a hoax. With this, it can be said that the comfort women problem has been virtually invalidated. The core of the comfort women issue is “compulsory recruitment”, which turned out to be fundamentally flawed, rendered by the Asahi retraction in 2014 fictional (so-called “steamed bread without bean paste in it”). Koreans treated this as an issue believing the recruitment was compulsory, but it turned out to have been based on lies (compulsory recruitment) ; so it’s only natural that it should be completely invalidated, but in reality, Korea, Japan,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UN, American Congress, etc.) have come too far to go back when it comes to the comfort women issue. Japan hopes that the interest in this issue will fade over time. But South Korea, having been blinded by anti-Japan sentiments, does not seem to have abandoned their intention to attack Japan, clinging onto the comfort women issue as long as possible.

朝日新聞は2014年、自分たちが過去に報道した慰安婦関連「済州島の強制連行」が誤報だったと正式に発表した。これで慰安婦問題は、事実上源泉無効となっ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慰安婦問題の核心は「強制連行」だが、その核心が致命傷を負ったので、慰安婦問題は2014年の朝日の誤報認定で、事実上、核心が行方不明になったフィクション(俗称「あんこのない蒸しパン」)になってしまっ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強制連行があったと思って問題化していたが、それ(強制連行)が嘘だったわけで、当然ながら源泉無効にして当然だが、現実には、慰安婦問題で韓国と日本、国際社会(国連、米議会など)があまりにも遠くに来てしまった状況なので、今になって源泉無効に戻す力がなくなった状況になった。最も現実的な解決方法は、問題の「フェードアウト」(徐々に消滅)しかない。自然と関心が離れるようにするというものである。日本はこれを望んでいる。ところが、反日に埋没した韓国側は、なるべく慰安婦問題にぶら下がっていこうとしていて、日本をずっと攻撃する意図を放棄していないように見える。

 日本語・韓国語併記 画像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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